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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펜

카렌다쉬 (까랑다쉬) Caran D´Ache

비영어권 언어를 한국어로 표기 할 경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언어를 원어가 아닌 영어식 발음으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한국에서는 카렌 다쉬로 표기되는 이 상표는 프랑스어로 쓰여진 만큼 까랑 다쉬라고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에 오픈한 공식 홈페이지가 카렌다쉬라고 표기를 하고있으니 카렌다쉬라고 쓰겠습니다.

카렌다쉬는 1924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창립되었습니다. 창립자인 아놀드 슈바이처가 "Fabrique de Crayons Ecridor"라는 회사를 인수해  "Fabrique Suisse de Crayons Caran d´Ache"라는 이름으로 붙이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번역하자면 "까랑 다쉬 스위스 연필 공장" 즘 되겠네요. 그렇다면 까랑다쉬는 무슨 뜻 일까요?


일단 1898년 2월 14일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에 실린 만평을 보시죠. 


출처> 위키백과.


첫 그림 밑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무엇보다 드레퓌스사건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 아래 그림에는 "...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 말하고 말았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있었던 정치스캔들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으로 보낸 한 장의 기밀문서가 그 발단입니다. 익명으로 발송된 이 문서의 작성자를 색출하던 프랑스 육군은 범인으로 드레퓌스 소령을 지목합니다. 그는 유죄판결을 받고 섬으로 유배됩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896년 조르쥬 피카르 중령이 다른 간첩사건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드레퓌스 사건을 접하게되고, 그 문서를 작성한 진범이 에스테라지라는 인물이란 것을 알아냅니다. 드레퓌스는 무고하다는 것이죠.
당연히 중령은 상부에 보고 하고, 에스테라지는 법정에 섭니다. 

여기서 부터는 왠지 익숙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에스테라지는 무죄로 풀려나고 그를 진범으로 지목한 피카르 중령이 오히려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체포됩니다.
소설가 에밀 졸라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 낱낱이 밝힌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고합니다.
그리곤 군법회의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1년 징역을 선고 받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아주 익숙한 이야기죠.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구글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게 카렌다쉬와 무슨관계가 있냐 하면, 위의 만평을 그린 앙마누엘 푸와레의 필명이 카렌다쉬입니다.
만평의 우측 상단을 보시면 카렌다쉬라는 이름이 써있죠.
앙마누엘 푸와레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20세경 프랑스로 넘어오면서 러시아어 연필(крандаш, 끄란다쉬) 를 불어식으로 표기한 Caran D´Ache를 예명으로 삼았던 거죠.
그리고 스위스의 연필회사 창립자 아놀드 슈바이처는 그가 좋아하던 이 만평가의 이름을 자신의 회사이름으로 택한 것이구요. 원래 연필이라는 러시아어에서 왔으니 연필회사 이름으로 딱이었겠죠.

까랑다쉬 1010


카렌다쉬는 명품 필기구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합니다. 지난 2008년에 발매된 한정판 1010은 스위스 시계를 모티브를 하고 있습니다. 1010은 그러니까 10시10분을 의미하는 것이죠.

500대 한정판으로 생산되어졌고 대략 삼천만원이 조금 안되는 가격입니다. 비싼걸도 따지자면 펠리칸이나 몽블랑의 한정판등도 많겠지만 시계와 같은 정교함과 우아함은 다른 만년필회사와의 차별성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펠리칸하면 녹색과 검은색의 스트라이프.
몽블랑하면 마이스터스튁의 배흘림기둥같은 몸체와 검은색위의 흰로고가 떠오르는데, 전 카렌다쉬하면 은도금을 한, 일자로 주욱 뻗은 슬림한 바디가 떠오릅니다.

카렌다쉬는 슬림하고 전통적이면서 심플한 디자인의 만년필들이 많습니다. 
유명한 것이 Ecridor 시리즈입니다.



창립자가 처음 인수했던 연필회사의 이름에서 따온 Ecridor 는 1930년대에 처음 발매되어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생산되었던 것은 클러치 펜슬로 몸체에 손으로 세공한 무늬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현재 10개의 에디션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며 모두 은도금, 로듐 코팅이 된 바디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몇몇 에디션은 만년필과 롤러볼펜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클러치 연필과 볼펜 혹은 둘 중 하나만 있기도 합니다.

우아함과 심플함. 사실 이만한 여성용 만년필도 없을 것 같습니다. 40만원선이니 혹 욕심을 내볼만도 합니다. 아니면 선물용으로도 좋을 듯 하네요.
언젠가 사용기를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cridor 보다 크기를 줄인 Ecridor XS 모델역시 은도금, 로듐코팅의 바디에 다양한 무늬의 각인을 기본으로 하지만 몸체의 길이가 훨씬 작습니다.



이 Ecridor의 저렴한 버전이 Caran d´Ache 849 볼펜입니다. 최근 한정판으로, 펜모양이 양각된 메탈케이스와 함께 판매되는 버전은 딱 선물용이죠.


까랑다쉬 849

모양 그자체는 Ecridor와 큰차이가 없습니다. 몸체도 금속으로 되어있구요. 케이스가 없는 일반버전은 만원가량 저렴합니다. 하지만 얇은 금속케이스는 실제로 보면 꽤 탐나게 생겼습니다. 케이스의 양각된 부분에 볼펜이 딱들어가고 나머지 공간은 활용불가 입니다. 실용성은 전혀 없죠.
볼펜은 가격은 비싸지만 작고 튼튼한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가격대비 성능에서 보면 글쎄요.
하지만 항상 그렇듯 디자인적 만족은 이 가격대 성능비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변수인데다, 결국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카렌다쉬 849 볼펜의 사용기는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사족> 근데 역시 까랑 다쉬라고 쓰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