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평균율 같은 연필, 파버카스텔 9000 빈티지
날씨가 풀리면서 다시금 벼룩시장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얼마전 벼룩시장에서 건진 파버카스텔의 오래된 연필을 소개할까 합니다.
1790년대 뉘른베르크 근교의 슈타인이란 곳에 카스퍼 파버가 운영하던 작은 연필 생산 공방에서 출발한 파버 카스텔은 현재까지 필기구 생산업체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는 9000시리즈는 뭐랄까요, 음악으로 치자면 바흐의 평균율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06년에 처음 생산된 이후 커다란 변화없이 생산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로고 A.W. Faber 이라는 문구와 1950년 만들어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로고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왼쪽의 녹색 사각형에 그려져있는 회사 문장은 슈타인의 도시 문장을 기초로 변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필통에도 좌측하단에 보면 Stein bei Nürnberg라는 지명이 쓰여져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이미지가 슈타인시 문장입니다. 역시나 오래전 부터 연필생산으로 유명했던 탓인지 시 문장에 연필을 그려넣고 있네요. 왠지 저같은 문구 매니아에겐 초코렛으로 만들어진 집같은 느낌입니다.
당시에는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알루미늄 케이스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필가격보다 케이스가 비싸지 않을까 싶을 정도네요.
파버카스텔 연필의 상징과도 같은 녹색이 입혀져 있습니다.
이 카스텔9000 시리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연필이기도 합니다. 파버 카스텔사는 이연필을 생산하며 연필심의 단단함을 표시하는 표준을 만들어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 널리 알려진 B, HB, F 같은 표시입니다.
1960년대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연필통안에는 운좋게도 당시 첨부되어 있던 연필경도표시를 안내하는 종이도 들어있었습니다.
또한 육각형 형태로 몸통을 깍아 책상위에서 잘 구르지 않게 한 것도 이 카스텔 9000에 처음 도입된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구한 것은 HB 입니다. 필기감은 굉장히 좋은 편이며 부드럽게 잘써집니다. 질나쁜 연필에서 느낄 수 있는 불순물로 인한 서걱거림이나 걸리는 듯한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http://www.faber-castell.com/